서울가정법원 판사워크숍… 가사소송 주요쟁점 토론
기록 열람·복사때 일일이 범관 허가 받는 것도 문제
이혼하는 부부들이 재산을 나눌 때 재산보다 빚이 많은 경우에도 재산분할청구를 받아줘야 한다는 판사들의 주장이 나왔다. 이혼시 채무가 재산보다 많을 때는 재산분할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인데 부부 공동채무인 경우에는 채무 명의자인 일방이 혼자서 채무를 모두 부담하게 되므로 재산분할청구를 받아들여 채무를 면책적이거나 혹은 병존적으로 인수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재혼시 성 변경이 가능해진 요즘 부쩍 많아지고 있는 공동친권 및 공동양육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달 25일 이호원 법원장과 김홍우 수석부장판사를 비롯해 판사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워크숍을 갖고 재판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던 6가지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주제는 이혼재판시 계속 논란을 일으킨 파탄주의 인정여부를 비롯하여 이혼에 따른 위자료액수 증액문제, 위자료 및 양육비 산정표 공개여부, 가사소송기록 열람, 등사의 법관 허가범위 문제 등으로 심도 깊게 논의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낸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견해를 끌어냄으로써 그 동안 판사 개인차원에서 문제제기를 공론화 함으로써 가사재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김영훈 공보판사는 “이번 워크숍은 이혼재판 업무를 해오던 가정법원 판사들 전체가 참석하는 최초의 행사”라며 “사전조사를 통해 판사들이 생각하는 가사소송의 중요 쟁점 6가지를 추린 후 토론을 가졌기 때문에 각 주제별로 깊이 있는 토론이 이뤄져 의미있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깨뜨린 책임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주지 않는 것이 기존 법원의 태도다. 이와 관련해 한 부장판사는 “유책주의의 예외로 상대방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이혼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만 유책배우자의 이혼을 받아주고 있지만 오기나 보복의 감정을 해석하는 문제에 있어 내심의 의사를 심도있게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15년 이상 별거로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 파탄주의로 가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할 것인지 논의가 있었다”면서 “실무상 이혼하는 쪽으로 조정을 권유하고 있지만 이혼으로 합의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 공동친권·공동양육 인정여부= 최근 자녀의 성 변경이 가능해지면서 공동친권과 공동양육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일방이 양육권을 갖는 경우 비양육권자는 아이를 뺏겼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공동양육을 인정하면 당사자들 사이에 만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독재판부를 맡고 있는 다른 판사는 “공동양육권 등의 문제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자녀의 복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욕심으로 공동양육권 등을 주장한다면 이를 배척해야 할 것”이며 “이혼소송을 하는 당사자들 대부분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데 어떻게 공동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아이의 관점에서는 일방의 당사자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소극재산이 적극재산 초과해도 재산분할청구 인정= 한 부장판사는 “재산분할을 할 때 소극재산을 공제하는 이유가 소극재산이 부부가 함께 가사생활을 하다 생긴 채무로서 부부가 같이 책임지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인데, 적극재산이 없고 소극재산만 있다고 하여 재산분할을 기각한다면 채무명의자인 일방이 혼자서 채무를 부담하게 되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논리적으로는 소극재산이 적극재산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재산분할을 기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위자료와 양육비 산정표 공개문제= 가정법원은 최근 위자료에 관한 산정기준표를 만들어 이를 공개할 지 여부를 내부에서 치열하게 논의한 바 있다. 한 판사는 “양육비 산정표는 공개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위자료 산정표는 오히려 법관의 재량을 축소시키는 족쇄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어 내부적인 자료로만 활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판사는 “위자료 산정표를 공개하면 위자료를 산정할 때 재산분할이 안되면 위자료를 증액한다든가 하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게될 우려가 있는것 같다”고 우려했다.
◇ 소송기록 열람·복사 허가범위 제각각=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가사소송법은 가사재판 당사자들이 상대방 제출 증거를 열람하기 위해 재판장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과거에는 후견인의 입양승낙 등의 비송사건의 경우에만 재판장의 허가를 받도록 해 다른 소송기록의 경우에는 판사의 허가없이도 열람·복사가 가능했으나 개정법 시행 이후에는 소송 당사자와 제3자가 재판중 소송기록을 보거나 등사할 경우 재판서·조서의 정본·등본·초본을 받는 경우 모두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사소송의 경우 당사자들의 사생활보호가 두텁게 보호돼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정이 신설됐다. 그러나 개정법은 허가대상에 소송에 관한 증명서를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에 법원의 업무가중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소제기나 송달증명원등 증명서류 발급하는 경우에도 일일이 법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업무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모판사는 “증명서을 받으러 온 당사자들이 판사가 재판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찾아왔다면 증명서 때문에 판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시행초기인 이상 법 규정 그대로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업무부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사건의 기록을 열람 복사할 때 재판장의 허가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소송에 관한 증명서류는 재판장의 동의없이 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부 다른 판사들은 소송사건의 경우 제3자가 청구한 경우에만 재판장의 동의를 필요한 것으로 운영하고 있다. 가정법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대법원에 ‘가사소송의 경우 당사자들은 서로 사전에 포괄적인 승인을 얻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 여부’에 관한 의견을 요청해둔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